'여성 영웅들은, 그와 같은 남성들을 기준으로 한 영웅 서사와는 달랐다. 남성 영웅들이 땅을 박차고 하늘을 지향할 때, 이들은 왜 사랑과 결혼, 임신과 출산에 발목을 잡힌 채 자꾸만 땅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일까.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영웅의 여정을 가로막는 커다란 족쇄에 불과한 걸까'
우리나라에는 우먼 박스가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글인데 나는 이 논지에 굉장히 동의했다.
우리나라에는 맨박스가 아니고 우먼 박스가 있다. (인용 글 1로 아래에 글과 링크를 복사붙여넣기해두었다.)
나는 그래서 옛날 이야기들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게 본게 방한림전 밖에 없다.
이상하게 여성 영웅들은 오만 신기한 능력과 혜안으로 어느 인간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지만 결국은 넌 여자니까 결혼하고 애낳으라는 공격아닌 공격을 받고 집안에 갇혀 사는 걸로 끝이난다. 나는 이 이야기 구조에 어린 시절부터 이골이나서 아주 아주 싫어했다. 요즘 판타지 소설에서 조차 이딴 구조의 글이 있는지 미리 결말을 확인하고 읽을 정도다.
-> 여주판타지로 유명한 편곤 작가의 '기사의 일기'도 이 구조였던거 같은데 정확히는 몰라도 어쨌거나 남장을 그만두고 다시 아무이름없는 00의 아내인 아무개로 산다는 결말이라고 해서 전권 사놓고 보지를 못하고 있다.
책에서는 뭔가 이러한 이야기를 여성영웅의 소설들은 전복적이라거나, 여자가 사회에 진출하는것에서 균열을 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보수적인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서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나도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그러한 보수적인 내용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서 글쓴이가 담고자 했던 조선 여성의 꿈꾸던 세계와 소망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1.바리, '여성 잔혹사'를 전복하다: 바리데기
여성 장수들은 아기장수 설화의 리스크에 더하여, 여성으로서의 차별까지 겪게 된다. 이들은 함께 등장하는 남성 장수보다 더 뛰어난 힘과 지혜를 갖고 있으면서도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가족에게 발목을 잡혀 패배하고, 살해당하거나 결혼을 강요당한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웅 서사의 시작과 끝을 출발과 귀한으로 설명했듯이 여성 영웅들도 이러한 구조를 전형적으로 따른다. 다만 기승전결의 끝, 결에서 남성영웅들이 행운에 의지하거나 잔꾀를 부리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고, 모험에 대한 보상으로 아름답거나 신분 높은 여성을 얻어 돌아오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과 다르게 여성 영웅들은 전까지는 나라를 구하고 남성으로서 입신양명하고 출세하지만 결에서는 가족이나 남자에의해 규방에 처박혀서 애나 낳는 존재로 격하된다.
하지만 그동안 놓쳐왔던 건 여성들이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고난을 맨몸으로 관통하며 근원으로 돌아가 마침내 신이 된다는 결말들이다. 여성으로서의 고난을 겪으며 삶의 본질과 통과의례를 온몸으로 맞닥뜨린 그들은 버림받은 어린 딸에서 여신이자 어머니로 거듭난다.
바리데기처럼 신이 되는 서사는 없으나 자신의 소명을 찾아 모험하고 여성이 꿈꿀 수 있었던 일생 안에서의 완전함을 찾는다정도의 서사가 이루어진다.
옛날 시대의 성별차별을 생각하면 이정도로도 전복적이라 평할만 한 거 같다.
다만 영웅의 두명의 신부를 합리화 하려고 아향과 여형 이야기 구조를 가져오는 것은 치졸하기 그지없다.
2.'버림받은 딸'을 영웅으로 만드는 세어머니: 숙향전
뭐 이래저래 다루긴 하지만 기나긴 이야기 구조에서 여성의 환경은 생각지 못하고 인연이나 점지해주고 구박받을 상황 만들게하고 나~중에 알게하는 그런 선녀나 이런 구조는 별로 좋지도 재밌지도 않은데 2장에서 내가 놀란것은 바리데기에서 바리데기의 어머니인 길대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사실 길대부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한적이 없는데 길대부인도 남편이 자식을 죽이라 해도 거역하지 못하는 사연이 있었다.
일단 돈이라는 재산이 자신에게 없어 권력이랄 게 없었고, 혹여 자신은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언정 여섯딸들은 그대로 아버지와 집에 남아야한다. 그런데 집안에 엄마라는 보호막이 없는 남은 딸들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계모에게는 구박받고 아버지에게는 방치되어 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니 막내 하나 살리자고 나머지 여섯이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아들이면 후계자니 아버지 사랑채 뒷편 방에서 후계자로 자라며 보호받겠으나 딸들은 계모의 안채 뒷방에서 눈치보며 자라게되니 과연 어머니의 선택이 여섯딸에게로 기울수밖에 없었다. 참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성애란게 정말 희박하구나 싶었던 배경이었다.
이 희박한 부성애는 다른 의미로 '가부장제의 수호자'로 나타나는데 숙향전의 김전도 이러한 수호자인 아버지다. 자신의 집안의 제사, 대를 잇는다는 숭고한 목표때문에라도 아이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버리고 도망가자고 하고 정말로 애버리고 도망간다. 만약 아들이었다면 대를 이어 제사도 지내주어야하니 어떻게든 살려갔을 양반이다. 그 어머니는 자식과 같이 죽을 테니 혼자도망가라 하지만 남편이 그러면 부인과 딸과 같이 남아 죽겠다고 하니 차마 그 대단하신 집안 대를 끊은 미련한 며느리, 내조 망친 아내 되기 싫어 애버리고 같이 도망가자는데 동의한다.
하긴 애초에 딸이란게 부모에게 잘하고, 살갑고 효도 잘하고 등등 그놈의 '기능'에 의해 호불호가 생기지 않았던가. 그냥 맹목적으로 사랑받는 건 오직 아들에게만 한정되는 거 같다.
3.아버지라는 숙명의 비극
심청전은 보면 볼수록 속이 터지는게 이놈의 심학규가 하는일이 없다. 그냥 하는 일이라곤 대를 이을 아들내놓으라고 지 마누라 닦달하다 무리하게 애낳은 부인이 죽으니 7살 딸에게 빌붙어 산다. 후에 심청이 죽으니 다시 뺑덕어멈과 사는데 뻉덕어멈이 대를 이어준다고 속이니 또 냅둬서 화를 부른다고 해야되나. 아무튼 도무지 왜 이놈까지 결말에서 행복해지는지 속이 터진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심청은 이제 모험을 떠난 영웅이 신을 만나 자신의 근원을 본 것처럼 더이상 속세의 인연은 중요치 않으니 그냥 구휼하듯 적선했다고 보는게 더 나은 거 같기도하다.
장화홍련에서는 조선 중기까지의 부부 재산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구박받다 죽었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죽인 배경이 재산이 걸려있으니 그렇게까지 했구나 싶었다.
조선 중기까지는 부부사이에도 각자 재산권이 인정되었는데 남편의 재산인 '부변'과 아내의 재산인 '처변'은 별개로 생각되어 매매, 거래가 가능하였으며 죽은 뒤에도 다른 부인이나 첩의 자식이 아닌 자신의 자식들에게 온전히 상속이 가능했다. 또한 장화홍련의 배경인 조선 전기에는 아들 딸 출생 순서 차등없이 적실 소생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받았으며, 양첩 소생의 자녀들은 적실 소생의 7분의 1, 그리고 천천 소생에게는 10분의 1을 주었따고 한다. 장화홍련에서는 어머니 장씨 부인의 재산이 배좌수의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니 허씨는 장화홍련을 죽여야했다.
좀 지겨운 것은 아무것도 안하고 무능한 아버지들은 항상 그냥 가만히 있었고 무시하고 방임했음에도 결말에서 아내를 새로 얻고 행복해진다. 여성의 정조가 강조되던 사회에서 처녀가 음행을 저지르는 것은 죽어 마땅한 죄이며, 명예살인이 용인되는 데다가 이러한 상황은 당시 남성 가부장들에게 '집안일'에 불과했으므로 간섭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특히나 감싸줄 필요없는 쓸모없는 전처딸이면 더 그랬다.
다만 여기서 왜 항상 문제는 계모인가이다.
나도 생각치 못했던 것이나 사실 계모도 권한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첩이란것은 결코 과거에도 좋은 지위는 아니었고 단순히 남자가 아내가 필요하고 잡다한일을 맡기기 위해 존재하기에 권리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왜 이야기에는 이런 후처들이 날뛰는 걸까?
당시 사회에서 과부가 된 여성이 수절하고, 따라죽는걸 열녀라 칭송했다. 정약용은 '열부론'으로 남편이 제명대로 죽었음에도 아내가 따라 죽는건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지만 가족들에의한 열녀만들기, '여자죽이기'는 아주 성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들을 고발하는 것은 부모에 불효하는 것이며 이는 모반이나 대역, 내란과 같은 반열에 들어가는 악행이다. 특히나 부모를 관에 고발하면 더더욱 악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녀를 만드려는 가족들을 고발하는 일은 존재할 수 없으니 계모라는 인물로 그 원통함을 달랬다는 것이 설득력 있다.
또 지겨울 정도로 느끼는건 아버지들은 끊임없이 결혼하고 애를 가진다.
그놈의 대잇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토나올정도로 강조된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애를. 아들을 낳아서 제사지내는 후손을 낳는거 말고는 없어보인다.
전란에 가족을 지키기보다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아들낳기전에는 죽을 수 없다며 애버리고 도망가는게 당연히 이야기에 나오는걸 보면 정말로 그저 '가부장제의 수호자'일 뿐인게 이야기속 아버지들이다.
4.결혼, 여성을 구속하는 족쇄가 되다
귀머거리3년,장님3년,벙어리3년.시집살이는 종종 이렇게 비유되었는데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를 알려준다. 특히나 양가부모가 주관해 육례를 갖춰 맞아들인 며느리라 할지라도 시집살이는 힘들었다. 일단 시부모의 사랑을 받아야했고, 또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은 별개이며 또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유지되지 못하는 불안정한 지위였다.
여성 영웅의 주 서사 구조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것중 하나가 양가부모의 육례를 갖추지 못하고 결혼하는 것으로서 생기는 갈등인데 아예 시부모에게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하여 시어머니가 사는 안채 건넛방에서 살지도 못하고 별채 방에서 사면서 또 나름 시집살이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진다. 지금으로 봐서는 웃기지도 않는데 과거에는 친정으로 내쳐지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게 없는 여성으로 이는 굉장히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과거에는 여자로 태어나는 거 자체가 족쇄였는데 애초에 먹고 살 일을 할 수 없으니 결혼을 했지만 이또한 족쇄여서 도대체 여성에게 행복이 어디있었나 싶다.
5.사랑으로 낡은 세계에 균열을 내다
운영전은 김진사와 사랑에 빠진 궁녀가 자신을 걱정한 다른 이의 말을 듣고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사실을 알고 분노한 왕에게 죽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춘향전은 기생인 어머니가 돈으로 기적에서 이름을 지워서 기생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머니의 신분따라 기생취급받는 춘향을 몽룡이 희롱하려고 부르면서 시작된다. 이에 춘향은 몽룡을 거절하나 둘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래저래 특히나 춘향전에대해서는 백마탄왕자 만난 이야기아니냐 폄하하지만 신분상승이나 부귀영화를 노린 이야기로는 보기가 어려운 것이 굳이 돈이나 신분상승을 노렸다면 잘생겼고 이미 급제한 양반, 3~5년간 이 지역을 다스릴 종3품 남원도호부사의 수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의 아내가 된다면 신분상승과 부귀영화가 따라오게 된다. 그러니 언제 입신양명할지모르는 안터진 로또인 몽룡보다는 남원도호부사의 수청이 더현실적인 신분상승 스토리의 조건이 된다. 게다가 기생의 딸인 이상 춘향은 자신이 소실 자리밖에 못얻는것도 잘알았다.
다만 이이야기에서 나도 깨닫지 못했던 것은 이러한 배경을 다 고려하더라도 춘향의 절개는 당시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얼토당토않는 것이란 것이다. 왜냐면 여성의 정절은 어디까지나 사대부 여자나 지킬 수 있는, '신분'이 있는 사람만 지키는 것이므로 사대부로서 변학도는 사람이 아닌 춘향이 절개를 지키려는 것에 더 분노한다. 지킬수있는 자가 아닌,권리도없는자가 지키려는 것이 괴씸한 것이다. 오히려 양반의 윤리를 잣대로 삼아 반기를 든 천하의 무도한 년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러한 춘향의 저항은 신분제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패륜이 된다.
이런 서사 과정에서 후에 몽룡은 처음에는 기생의 딸인 춘향을 우습게 알고 희롱하려다가 사랑에 빠지고 춘향의 어미의 기도를 보며 성리학적 세계관이란 견고한 신분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기생의 딸이라도 사대부가 여식들 못지않게 뛰어날수있으며 양반인 자신과 어깨를 함께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생각했건만 사랑을 통해 기존의 신분사회의 틀을 허물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6.당나귀 가죽을 벗는 여성들
정조와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다해도 여성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있다. 여성영웅이 남성영웅과 같이 가정에서의 투쟁담을 넘어 그이상,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험을 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바꿔야 했다.
이야기 당나귀 가죽에서도 자신을 노리는 아버지를 피해 공주는 당나귀가죽을 쓴 끔찍한 모습으로 세상으로 도망친다.
비록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자신의 뜻대로 운명을 결정하게된 순간을 요정은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며 축복한다.
금방울전도 결혼을 할수있는 16세가 되기전까지 금방울로서 여러 신통력을 부리며 영웅생활을 하다가 16세가되어 자신이 구해준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낳고 사는 이야기인데 끝은 결국 결혼일지라도 당시 여성들이 꿈꾸었을 이상적인 삶을 스스로 쟁취한다는 면에서 요즘의 회귀로맨스판타지에 비유되었는데 어쩐지 맞는거 같다. 결국에는 그렇게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구조인거고 결혼을 내가 끔찍해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감상에 불과하니까 과거 여성들의 생각과 소망을 생각하면 결혼이 결국에는 그때 생각할수있는 가장 마지막 행복이었을 것이다.
박씨전은 남성보다 더 뛰어난 여성이 지혜로 남자들의 위기를 대신 해결해주고 숭상받는다. 본인이 직접 나서진 않고 집안에서 뜻을 전하는 정도긴 하지만 다음 7장에서 나오는 이야기 전단계의 이야기라고 하면 이해가 된다.
7.유리 천장을 뚫기 위해 남자가 된 여성들
이제는 집안에서 도움만 주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는지 남장으로 여성들이 나아간다.
특이한 건 이러한 남장 소설에서 누구보다도 포용적인건 황제, 왕이다.
그에 비해 그 남편들은 얼마나 쫌생이인지 그리 죽마고우이며 대단하다고 칭송했던 상대가 여자이고 자신의 아내가 되자마자 열등감에 사로잡혀 집에서 칼이나 휘두루고 난리도 아니다.
여기서 이학사전은 남장으로 승승장구하지만 아버지의 영혼이 딸의 성별을 남편감으로 점찍어둔 이의 꿈에나타나서 커밍아웃시키고 & 딸을 아프게 해서 강제로 커밍아웃 시킨뒤 결혼시키는데 주인공 한경은 끝까지 결혼을 싫어하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황제의 명으로 결혼한다. 남편은 끝까지 찌질하다가 결국엔 애낳고 잘사는게 결론인데 별로 좋진 않다.
이놈의 아버지란것들은 딸의딸자식노예노릇이그렇게중요한지 딸의말과의지는죄다무시한다.
방한림전은 남장에서 더 나아가서 아예 여자와 결혼도 한다. 애초에 여자임을 알고 결혼해서 둘은 행복하게 잘살며 신이 내려준 양자를 입양해 잘산다는 내용인데 진화될 수록 점점 남자가 서사구조에서 빠지는 거 같아서 뭔가 유쾌하다.
정상적인 관계를 강요당하던 여자들이 이골이 나서 지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책읽기를 끝내며
나는 보통 이러한 옛날 이야기는 한번 읽고 빨리 넘어가는 편인데 항상 여성을 결혼과 출산으로 강요하며 안채에 넣어버리는게 괴씸하고 보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그 상황 속에서 당시 여성들의 소망이나 해석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들에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본 책을 읽게 되었다.
과연 이야기를 담고 있다보니 읽기가 좋고 이해하기도 좋다.
당시 여성들이 힘들었다는 것이 명백한 만큼 이야기 구조도 결코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지만 마지막의 끝이 방한림전인것처럼 어쩌면 여성은 여성 그자체만으로 이제 나아갈 때라는 걸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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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글 1.한국에서는 여성들이 갑옷을 입고 우먼박스를 차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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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랑 딪 프린세스 원작까지 찾아다니면서 읽은 붕임. 영미문학을 찾아읽을수록 이상하게 그들이 말하는 맨박스가 한국에서는 '우먼'박스의 형태로 여성들에게 강요되어왔다고 생각함.
다른 문화권 일반적인 서사 구조:
평범한 소년이 남성 주인공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괴물을 때려잡고/ 가난을 극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의 고난을 극복해야 남성 주인공으로 인정. 남성은 강인하고, 울지 않으며, 지혜롭고 모험적일 것을 요구받음. 남성은 고독하고 억척스러우며 황야의 개척자거나 왕자, 또는 기사도를 지키는 명예로운 존재여야 함.
=>이것이 서구식 맨박스.
여성은 맨박스를 충실하게 차려입은 남성에게 주어지는 트로피=>이게 서구식 여혐
걸스캔두 애니띵, 여자는 꽃이 아니다, 무거운 맨박스 벗어라,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도움 => 이게 서구 페미니즘의 주된 양상이란 말임?
그런데 저 맨박스라는 것이 한국 여성들에게는 묘하게 익숙하지 않음?
한국에서는 아버지를 구원하는 건 딸인 심청이임.
다른 문화권의 남성들이 기사와 왕자에게 이입하며 맨박스를 찰 때,
한국 남성들은 아름다운 딸 심청이에게 구원받는 무능한 아버지 심봉사 이야기를 만들어 이입함.
죽은 구렁이 남편은 살살이꽃을 찾아온 용감한 여성에게 구원받고,
한심한 이시백은 지덕체와 재력을 두루 갖춘 아름다운 박씨부인에게 구원받음. 서양에서는 (솔직히 이것도 이상함. 동남아시아나 중동 국가 이야기에서조차도 여성인권은 바닥일지언정 맨박스는 남성한테 채움.)백마탄 왕자가 여성을 구원하지만 한국에서는 백마탄 공주들이 남성을 구원함.
선화공주는 할 줄 아는 것이란 명예훼손뿐인 서동을 넓은 아량으로 구원해주고, 평강공주는 마마보이 은둔형 외톨이에 바보인 온달을 가르치고, 먹이고, 심지어 시어머니도 부양해줌.
바리공주 이야기가 한남 판타지의 정수인데, 바리는 자기를 유기한 아버지도 구원하고, 본인을 강간한 동수자의 아들도 낳아주고, 어머니의 역할도 수행하지만 결국 왕위는
그 남편과 아들들로 이어짐.
말 그대로 기사도, 가장도, 구원자도 모두 여성인데 이상하게 한국 이야기에서 결국 왕관을 쓰는건 모두 남성이었단 말임.
박씨부인전에서는 남편이 벼슬을 하고,
바리공주 이야기에서도 왕이 되는건 남편과 아들들이고,
선화공주와 평강공주도 결국 남편이 왕관을 쓰고,
근대문학에 와서도 여성들의 희생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건 남성이란 말임? 한국에서 맨박스를 누가 쓰고 있는지 명백하지 않음?
현실에서도 기집애들 질질 짜면 재수없으니까 울지 마란 말을 듣는건 언제나 딸들이었고, '장녀는 살림 밑천이라서'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집안을 일으키는 건 모두 딸들이었고, 여학생들은 공부 잘 하고 모범적이고 성실해야 하고, 여성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여성은 딸과 아내로서 강인한 심신으로 남성을 구원해야 하고, 심지어 그 와중에 아름다워야 함. 진정한 한국여성이라면 군대도 갔다와야 하고, 최근에는 여성들에게 '남성 못지 않은 근력'도 요구함.
서구 남성들 사이에서 카우보이 서사가 유행하며 개척자 남성성이 각광받을 때 한국에서는 그걸 여성에게 요구함.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수성가했지만 가난한 김첨지는 임신한 아내를 발로 차고, 한국문학의 무수한 찌질이들은 부잣집 외동딸인 첫사랑이 창녀로 전락하기만을 기원함.
한국 여성들은 무능한 남성을 삯바느질로 부양하는 억척스런 여성성을 요구받음.(일본에도 나데시코 여성성이 있긴 한데, 나데시코가 야생화처럼 혼자서도 꿋꿋하게 잘 사는 여성이라면 한국 여성들에게 요구된 여성성은 말 그대로 가정을 부양하고 출산도 해주는 노예인 동시에 남성도 구원하고 아름답기도 해야 하는 기괴한 여성성임. 최소한 오싱한테 왜안만나조 애낳고 밥해조 썅년아 하는 일남은 없었음. ) 남성 대신 밭을 갈면서 생활력과 노동력과 강인함을 요구받은 건 여성이었고, 근대화 시기에 가정의 생계와 남자 혈육의 학비를 책임지는 것도 여성이었음. 개척자 맨박스도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참. 사탕수수 농장과 시베리아 강제이주지에서 아내들이 밭을 갈며 육아할 때 도박과 매춘으로 전재산 탕진하고 아내 패는 한남들=> 너무나도 익숙한 서사 아님?
한국의 페미니즘이 남자를 배제하고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인 듯.
남자들아 너희도 맨박스를 벗어라, 우리 모두 성평등하자고 외치기엔 남성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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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장
아기장수 설화 중 하나인 오누이 힘내기 설화: 오누이가 집안에 둘이 같이 살 수 없다며 목숨을 건 내기를 하게 되는데 남동생의 목숨을 더귀하게 여긴 어머니가 누이에게는 뜨거워서 식혀먹어야 하는 팥죽을 남동생에게는 찰밥을 주어 결국 누이가 목숨을 잃는 다.
힘센 전강동이와 누나: 동생보다 현명하고 강한 누나가 뛰어난 재치와 능력으로 동생을 이긴다. 그러나 누나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바리데기: 일곱번째 딸인 바리데기가 태어나자 오구대왕은 길대부인에게 아기가 죽도록 버리라 명령한다. 바다에서 옥함에 든 아기를 주운 비리공덕할아비와 할미가 바리를 정성껏 키운다. 시간이 지나 병에 걸린 오구대왕은 일곱쨰를 죽인 천벌로 아프게 되고 서천서역 너머 동대산 약수를 마셔야 낫게 되었는데 이때 길대부인이 찾아낸 바리데기가 자식 중 유일하게 서천서역으로 가겠다고 하고 길을 떠난다. 저승에서 바리는 여러 시험을 받게 되고 무장승에게 9년 일을 해주고 여자라는 것을 들키자 결혼하여 일곱아들을 낳고 오구대왕이 죽은 지 3년 뒤에 나타나 오구대왕을 되살린다. 오구대왕은 바리데기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손자들을 후사삼겠다 하나 바리데기는 무조신이 되겠다며 그를 거절한다.
아황과 여영: 요임금이 순이 왕이 될 재목인지 보고자 자신의 두딸과 결혼시킨다. 순의 위기때마다 아황과 여영이 구해주고 순은 점점 더 명성이 높아진다. 마침내 순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2장.
숙향전: 숙향은 전란으로 부모가 아기를 버려둔채 도망가서 장승상 댁 양녀로 살게 되나 시기한 시비의 농간으로 도둑 누명을 써 쫓겨난다. 숙향은 마고할미가 점지해준 인연인 선과 결혼하지만 부모가 정해주지 않은 결혼을 하게되자 이상서는 며느리를 구박하고 자신이 숙향의 아버지인지 모르는 낙양 태수 김전에게 잡아다 죽이라 명한다. 숙향은 홀로 이화정에서 살아간다. 추후 상서부인이 달구경을 갔다가 숙향을 데려오게 되고 숙향의 아버지가 김전인것을 알고 숙향이 명문의 후예이자 선녀가 알려준 배필임을 알고 며느리로 인정한다.
3장.
심청전: 심봉사 심학규는 대를 이어야한다는 목표끝에 안그래도 힘든 살림살이에 아내를 닥달해서 임신시키나 그로 인해 병든 아내는 죽고 겨우 낳은 딸은 동냥젖으로 겨우 먹여살린다. 그리고 딸이 7살이되자 딸인 심청이 동냥을 다닌 것으로 먹고 산다. 후에 심학교가 공양미 300석으로 부처님 눈뜨게 해준다는 소리에 그 쌀을 내기로 약조하고, 이를 들은 심청이 그 쌀값을 대려고 몸을 바치게 된다. 장승상댁이 제물되기로 한 날 전날 그 사실을 알고 쌀값을 대기로 하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는 뱃사람들이 힘들테니 그냥 죽겠다고 심청이 말하자 눈물로 보내주고 심청은 바다에 뛰어든다. 그러자 옥황상제 명으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고 임금과 결혼한다. 후에 아버지를 찾으려는 심청이 눈먼 장님 잔치를 열어 심학규를 찾아내고 심학규와 맹인 점쟁이 안씨가 결혼한다.
장화홍련전: 배좌수는 장화와 홍련이라는 딸을 두고 허씨를 재취로 맞이해서 장수라는 아들을 둔다. 이때 허씨는 장화 홍련을 구박하고 재산권에서 딸들이 어머니 재산전부와 아버지 재산중 5분의 1을 가져갈수있어서 그사실을 알게된 허씨는 마침내 장수를 이용해 둘을 죽이고 만다. 후에 둘은 관아 부사의 꿈에 나타나 자신들의 원통함을 밝히고 허씨와 장수는 사형당한다.후에 장화와 홍련은 다시 결혼한 배좌수의 두딸로 다시 태어난다.
콩쥐팥쥐전: 계모는 친딸 팥쥐와 이붓딸 콩쥐를 대놓고 차별하고, 김감사와 콩쥐가 결혼하자 팥쥐가 콩쥐를 찾아가 죽인뒤 콩쥐행세를 하게된다. 이에 억울한 콩쥐의 원혼이 김감사를 찾아가고 사실을 알게된 김감사가 콩쥐의 시체를 발견하고 상소를 올려 팥쥐를 사형에 처하게 한다. 팥쥐의 시체는 그대로 단지안에 담겨져 배씨에게로 보내진다. 김감사는 되살아난 콩쥐와 재회하고 콩쥐아버지에게도 재혼하게 해주었다.
4.사씨남정기, 숙영낭자전, 당금애기
5.운영전, 춘향전
6.금방울전, 박씨전
7.홍계월전, 이학사전, 방한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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