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책이 재미있는 점은 인간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기재하는 것인데, 보통 좋은게 좋은거지 하고 화통하게 넘기는 것과 다르게 하나하나 꼬집기 때문에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
다만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란건 다읽고 표지를 보고 나서 느낀건데 그에 대한 한줄평은 아래와 같다.
한줄평 : 반전도 아닌데 이 책을 읽고나서 놀라기도 하고 바로 납득하기도 한게 바로 이 책이 '장편소설'이란 점이다.
인터넷으로 소개글이 종종 올라와서 계속 봐야지봐야지 했었는데 도서관에 갈시간이 없어서 못보고 있다가 언제부터인가 밀리의 서재에 있기에 읽었다. 대충 봤던 스크린샷 페이지들이 너무 현실감 넘쳐서 수필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책 표지에서부터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었는데 새삼 머리한대 맞은 느낌이다.
왜냐하면 일단 이 화자와 남편, 이 부부가 진짜 현실에 없을만한 이상적인 부부다.
물론 남편이 나름 사회적으로 헛소리하며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긴한데, 문제점을 인식하게되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바꾸려고 하고 아내를 존중할 줄 알고, 애가 28살이 되도록 아내와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친근한 가정의 남편이다. 너무 현실 수필처럼 글이 적혀있어서 어디서 이런남자가 있나 하고 신기해했었는데 장편소설이란걸 새삼깨닫고 바로 납득했다.
화자인 나역시, 현실속성 가득한데 나름 판타지도 있다. 프리랜서로 고용불안은 있지만 일을 잘해서 계약이 끊기지 않는 프로그래머. 그 와중에 딸인 도모미는 객관적으로 봐도 빼어난 미인도 아니고 사교성이 뛰어나지도 않아서 그냥 뒀다간 결혼을 못할 거 같은데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이는 가운데에 티비에서 중국인들이 부모가 나서서 대리맞선을 하는 장면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딸에게도 이야기해보니 비혼으로서 살겠다고 정한게 아니라 때되면 하겠거니 그냥 시간만 흘러가게 두고 있는 상황인지라 대화를 나눠보고 부부대리맞선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확실히 새삼 이야기 구성을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가족의 형태란게 되게 판타지 스럽긴 하다. 이런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수준의 비현실적으로 단란한 평범한 가족. 아버지는 남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아내가 힘든걸 묻기도 전에 알아서 집안일을 보고 할수 있는 적절한 파트너이며, 무슨 문제가 있으면 여러 책을 보고나서 이래저래 해결 고민을 해보고 나름의 해결책과 주장도 가져오는 사람이다. 그리고 딸도 야근으로 피곤한 상황에서도 단순히 부모를 무시하거나 화내지않고 나름 부부의 말을 차분하게 듣고나서 빠르게 현실 상황을 파악하고 부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동력이 있다. 무엇보다 화자가 가장 대단하다. 나이대가 5060임에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일잘하는 사람으로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고, 해결을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는 행동력이 빛난다.
우선 부부는 딸이 비혼주의라면 괜찮지만 아니라면 나서야겠다는 이상적인 결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않으면 자신에게 괜찮은 배우자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 도출도 굉장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내보내며 부부대리맞선 활동이 시작된다.
부부대리맞선의 상황도 되게 재미있는데, 직접 하면 정말 괴로울 거 같았다. 우선 누군가에게 눈앞에서 계속 자신의 자식과 집안 사정을 평가받는 상황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맞선을 제안하고 제안받기도 하는 그 과정자체가 괴로움 그자체라는 게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취직 시장도 만만치 않은데 결혼까지 이리 힘들다니 특히나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이가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부부가 일군 자산과 상황들이 별거아닌걸로 치부되며 거절되는 상황들이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특히나 화자의 남자들과 그 부모들에 대한 생각들이 나오는데 굉장히 현실적이며 생각해볼 여지도 많았다.
부부가 나누는 삶의 대한 태도 중 앞서 유행을 탔었던 신드롬같은 유행들은 3가지로 압축되는데 야자와 에이키, 크루아상 증후군, 마케이누 요 3가지로 어느정도 시대별로 유사한 논의는 항상 있는 거 같다.
야자와 에이키는 남자라면 꿈을 쫓으라고 자서전에서 말한 1970년대 보컬리스트로 이러한 삶의 태도는 대량의 꿈만 쫓는 가난뱅이 독신을 생산했다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평하며
크루아상 증후군은 크루아상 잡지에서 싱글의 삶이 멋지다며 진지하게 비혼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에대한 방향성은 제시해주지 않고 '멋진 싱글의 삶'이라는 망상만 만들어서 자신의 인생관이 어떤지를 생각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 그런 여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마케이누의 절규는 사실 저자의 뜻과는 정반대가 되었는데, 여성작가 사카이 준코가 에세이로 미혼 여성이 행복하다고 해봐야 30대 이상 미혼, 자녀없는 여자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니 스스로 힘든척 하는 게 낫다는 의미에서 마케이누라고 자조하는 게 낫다는 의미로 쓰였으나 어느새 진짜 그런 여자는 마케이누(싸움에 진 개)다 라는 식으로 쓰이게 된 듯하다.
지금도 쓰이는지는 모르나 그 시절 사람들은 기억하는 유행했었던 단어들 3가지인 모양.
처음 부부대리맞선장으로 들어선 화자는 부모들의 나이가 자신과 세대가 다르다는 것에 걱정이 생기고, 자신의 차림새가 허름해서 무시받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우선 나는 그냥 부모의 나이대가 맞으면 나이가 많아서 힘들겠네 정도생각이었는데 세대가 다르니 시집살이나 사고방식이 달라서 아예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흐름이 놀라웠다. 확실히 생각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다.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성의 일이며,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웃음으로 넘기고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를 당연시하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세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화자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남자들 중 생각보다 중요한 사진을 대충 찍은 사람들을 보면서 남자는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순진함에 대해서 자신의 딸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비판하기도 한다.
또 전업주부였던 여성과 대화하면서 화자는 벽을 만난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살림을 해본적 없는 여성의 순진하고도 이상적인 상황해석과 사고방식에 절망하기도 한다. 자신이 임신한 와중에 회사일을 했던 그 순간들과 너무 짧은 육아휴직으로 인해 고군분투했던 것들 등등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연히 딸려오는 맞벌이 여성의 고충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해맑기만한 상대가 당연하게도 집안일과 육아를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와중에 여성의 맞벌이를 허용해주는 자기들의 관대함으로 포장하는 상대를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젓는 화자의 생각도 현실적이다.
또 대리맞선을 하면서 구직 활동이나 이성간 남자들의 시선 혹은 여자들 사이의 문제 등등 자신은 이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자신이 외모를 잊고 그저 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새삼 깨달으며 나이를 먹는것에도 장점이 있다고 안도하는 화자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래저래 남자 부부의 속내를 비판하거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편식이 심한 남자: 여자가 맞벌이도 해야하지만 편식이 심한 남자를 자기가 이제 봐주기 힘드니 얼른 며느리에게 보내고 싶은 어머니 >아들을 잘못키웠지만 고치기 보다는 그냥 아들의 아내에게 떠넘겨서 뒷바라지 시키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다.
-결혼시 자기들 집주변으로 독립시키겠다는 주장: 우리 노후 뒤치다꺼리를 댁의 따님에게 맡긴다는 생각에 불과하다
-집안이 엉망이니 아내를 빨리 들여야겠다, 이른바 '남자아이라 어쩔수없네요' 주장: 아들 키우는 엄마들의 의식이 이래저래 상당히 문제가 있다.
-연애는 맞선과 다르게 그 모든 조건들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길 수 있는 마법의 위력을 가졌지만 사랑이 끝나는 순간 쉽게 이혼할 수도 있다. 냉철함이 결여된 병적인 상태라고 할수는 있지만 영원한 사랑은 생각보다 빨리 식기때문에 연애결혼이 중매결혼보다 이혼율이 더 높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그 속내를 금방 파악하게 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가 되듯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큰코다친다. 어른의 조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순진하기만 한 젊은 여자가 어떻게 남자에게 속을 수 있는지를 방지할 수 있다.
결혼만이 답이 아니라고 화자는 계속 말하지만 어쨌건 혼자 살아가는 것도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로 확고한 결정이 아니라면 그냥 대세의 흐름을 따르는게 나을 것이다. 화자의 딸은 결혼은 해야할 거 같다고 했으니 화자 또한 같이 딸의 결혼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끝에 도모미도 여럿 남자를 만나서 사귀지만 화자가 할말을 잃는 요즘 주장들도 있다.
가령, 생활비는 반반, 육아휴직때에는 과거 예금으로 해결하라는 남자의 말에 딸이 그 남자와 헤어졌다고 하자 부부도 바로 할말을 잃고 수긍한다.
어쨌건 이런 노고의 과정을 거쳐 결국 딸이 결혼하긴 하는데 나름 저자도 요즘 트랜드에서 적당히 타협을 하긴 한 모양.
화자의 딸은 생활비 반반으로 내되, 추후 사정이 달라지면 생활비를 남편이 내겠다는 남자였다.
>하지만 원래 생활비를 반반 내던 부부라면 이런 부채감과 압박감에 맘편히 육아는 못한다. 남자가 당장 압박을 주지 않더라도 결국 생활비를 반반 낼 수있는 맞벌이를 하게될것이다. 과연 이게 적당한 타협점인지는 잘 모를일이다. 앞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비판들을 생각하면 '타협'했구나 라는 생각밖에는 안든다.
뭐 원래 삶은 협상의 과정이니 화자의 딸부부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도 고민하고 적당히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상을 살펴보고 현실적인 조건에서 나름 이상적인 결론을 내려고 한거같긴한데 책 내내 이혼부부 사례가 너무 많이 나와서 과연 이 딸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봐도 책을 보면 과연 결혼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들정도인데 앞으로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은 어찌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사람 속내를 얼마나 빨리 알아채는지가 보이는 거 같았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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