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호/불호 카테고리에 넣지 않은건 이게 에세이 책이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담은 책이기때문에 호불호를 따질 필요도 이유도 없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으려고 시도한 적 조차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의 여행기를 듣는걸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상세하게 마치 그 순간을 소설처럼 묘사하듯이 이야기해준 이야기꾼이 내 지인 중에는 없었기 때문에 항상 여행기를 들으면서도 불만족하고 이내 감흥도 사라졌었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저자가 세번 스페인을 여행하는 에세이인데, 꽤나 상세히 그 당시의 기분과 생각이 나와있기 때문에 내가 바랬던게 여러 저자의 여행기를 보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걔중에는 내 맘에 쏙드는 여행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스페인을 여행하는 저자의 에세이로 상당히 나와 성향이 비슷해 보여서 더욱 공감이 많이 갔었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책갈피에 있는 저자의 말이다.
책갈피 "익숙한 길에만 머무르는 것 봐는 낯선 길 위에서 헤매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당한 길치라서 우리 동네라고 해봤자 그 단지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편인데 어쩌면 길치라서 모른다고 피해왔기에 더 모르는 악순환을 반복해온거라고 요즘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우리 동네'도 넓혀 보지 않았기에 나에게 낯선 길은 너무 많다. 그래도 작가의 말에 공감은 한다. 항상 똑같은 곳에서 삽질 해봐야 결론은 똑같을 테니 이것 저것 경험을 넓혀보는 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기 책을 읽는 것도 또다른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독후감은 이 책을 보라는 영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항상 막혀왔던 책 리뷰가 은근 쓰기가 쉬워진다.
P109 "여행은 '떠남'의 단기 속성 체험 코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행은 홀로살기의 서론 같은 체험코스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 홀로 여행은 해본적이 없어서 저자의 말을 보고 꼭 한번쯤은 홀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겁이 많고 예민해서 미뤄왔던 일이지만 나는 항상 애매하게 사람에 게 기대며 소극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그 불안감도 익숙해질 만큼 나는 무언가에 도전해 봐야 한다.
P145 "아무리 낮에 정신없이 관광을 하고 어찌저찌 만난 인연들과 시간을 보내도, 혼자 텅 빈 방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한때 여행을 간 혼자 여행을 간 지인들이 페이스북에 여행 사진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스스로 여행을 가서 외로움을 느끼며 그 지인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아직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혼자 여행을 가서 SNS 소통을 하는 걸 희한하다고 생각했었기에 저자의 경험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의 외로움이란 떼어놓을 수 없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다. 제아무리 둘이 여행을 떠났더라도 그건 외로움을 잠시 잊고 있는것이지 본질적인 외로움이 사라진 건 아니란 걸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직면하는 건 홀로여행일 때 가장 크게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SNS는 그 외로움에 직면했을 때 좋은 해소 거리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그 외로움에 직면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같이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그런 아이러니한 삶을 살아가야하니까 외로움이란 주제를 언제까지 회피해서는 곤란하다.
P254~255길거리에서 서로 같은 무슬림이라는 걸 확인하고 같이 차를 마시러 가는 생소한 모습에 저자는 노희경작가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대사를 떠올린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에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 간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한다. 나는 노희경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본적은 없지만 저 대사가 굉장히 감명깊었다. 사실 너를 이해한다는 말만큼 오만한 말이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각각의 사람 하나하나가 다른 우주인 것을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고 해도 그건 아주 미세한 교차점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가장 진심어린 말은 너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너와 같이 있고 싶다는 진심일 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부분, 마지막 여행에서 저자는 하나의 작은 운동으로 '공정 여행'을 하는데 그 세부목표중 하나가 글로벌 프렌차이즈 이용하지 않기였다. 하지만 그 챕터에는 작가의 짧지만 너무나도 공감되는 고뇌가 느껴졌다. 나역시 그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낯선 곳에 여행갔을 때 보는 익숙한 간판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만족감을 주는지는 느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난 지금도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던 순간을 기억한다.
익숙함이란 얼마나 무서운 덫인지 조그만 강아지가 주인의 품에서는 기고만장하게 우렁차게 짖는 것처럼 익숙한 곳에서 우리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얻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익숙함이 우리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코로나 3년, 여행은 아직 먼 얘기지만 나는 그저 여행가서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마시고 음식먹고 산책하는 게 다인 사람이라 그저 그 순간이 그리울 뿐 어마어마하게 그립지는 않다. 사실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해서 나같이 여행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니까. 하지만 가끔 낯선 곳에서 한껏 예민해진 채 불안을 떨치고 돌아다니는 그 순간이 그립기는 하다.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안타깝게도 절판되서인지 도서관에서만 빌려볼 수 있었다.
이북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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